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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생각

“똑똑한데 왜 산만할까?”

by 나무 그늘_ 2025. 4. 16.

고지능 ADHD 아이의 숨겨진 모습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얘는 머리는 좋은데 왜 이렇게 산만하지?”
“이걸 못 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 같아요.”
“수학은 엄청 빠른데, 준비물은 맨날 까먹어요.”

이럴 때 우리는 아이의 태도나 성격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 뒤에 고지능 ADHD라는 특성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부모님들께 아직 낯설게 느껴집니다.

고지능인데 왜 산만할까?

일반적으로 ‘지능이 높다’고 하면 모든 면에서 똑부러지고, 집중도 잘하며, 실수도 적은 아이를 떠올리게 되죠.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고지능 아이들 중 일부는 주의력 문제, 실행 기능의 어려움, 감정 조절 문제를 함께 겪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관련이 있을 수 있어요.

고지능과 ADHD가 공존할 수 있다는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런 아이들은 흔히 **2E(Twice Exceptional)**라고 불립니다.
즉, 영재성과 학습 또는 행동상의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지닌 아이들이라는 뜻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

이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뛰어난 능력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가려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 수업 시간에 집중이 어렵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요약만으로 내용을 따라가고 시험도 잘 봅니다.
  • 과제를 미뤄놓지만, 벼락치기로 높은 성적을 냅니다.
  • 질문을 깊이 있게 하고 말로 설명도 잘하지만, 일상 과제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주 잊어버립니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뇌 안에서 끊임없는 과부하와 자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말합니다.
“내가 멍청한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안 되지?”
“엄마, 내 머릿속이 시끄러워.”
“하루에 생각이 100개는 넘게 떠올라. 그런데 손은 안 움직여.”

이 말들 뒤엔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의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보인다면

다음과 같은 행동이 반복된다면 고지능 ADHD 가능성을 한 번쯤 고려해볼 수 있어요.

  • 좋아하는 것엔 과몰입, 싫어하는 것엔 완전 무관심
  • 규칙이나 반복적인 과제에 쉽게 싫증
  • 지적 호기심이 크고 말은 유창한데, 과제 완성도가 낮음
  • 자주 물건을 잃어버리고, 정리 정돈을 어려워함
  • 시간 개념이 약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움
  • 말은 조리 있게 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
  • 친구와의 관계에서 쉽게 오해하거나 감정이 격해짐
  • 자존감이 낮고, 스스로를 자주 비난함 (“나는 맨날 이래”, “난 진짜 이상해”)

이런 특성은 단순히 훈육이나 의지의 문제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왜 이런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채 좌절을 반복하게 됩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

  1. 비교를 멈추고 아이 자체를 바라보기
    다른 아이보다 못하거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느껴질 때
    아이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도록 부모의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너는 왜 이것도 못해?” 대신 “네가 힘들었겠다”라는 말이 훨씬 큰 지지를 줍니다.
  2. 정밀한 평가 받기
    단순히 ‘영재 검사’가 아니라, **지능검사(WISC)**와 주의력 검사(CPT, IVA 등),
    그리고 실행기능 및 정서 평가가 포함된 정밀심리평가를 통해 아이의 뇌 발달 특성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학습 환경 조정하기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기보다, 아이가 몰입할 수 있도록 ‘방법의 다양성’을 허용해보세요.
    예를 들어 시각자료, 자유 주제 선택, 짧은 과제 단위 설정 등이 도움이 됩니다.
  4. 자기조절 훈련
    고지능 ADHD 아이일수록 “하고 싶은 건 깊이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건 버티기”가 심하기 때문에
    인지행동치료, 놀이치료 등을 통해 감정 조절, 시간 감각, 과제 계획 등 실행기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5. 부모 스스로도 공부하고, 여유 갖기
    아이를 이해하려면 부모도 ADHD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아이의 행동을 ‘실패’로 해석하지 않고 ‘과정’으로 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아이는 다르게 배웁니다, 하지만 틀린 건 아닙니다

고지능 ADHD 아이는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 안에서 ‘이상한 아이’로 비춰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그 다름을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훨씬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산만함 속에는 때로 천재성이 숨어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것을 ‘문제’로만 보지 않고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시선이에요.